[차병직] 서울·군산의 바나나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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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3-05 14:36 조회61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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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한 해 5210만 톤 방치
선진국은 돈 주고 수출 자국 배출 45만 톤 그쳐 개도·선진국 1인 배출 100 대 1로 큰 차이
바다로 흘려보내는 양 한국은 387톤이라지만 재활용률은 불분명
쓰레기 분리배출 기준도 지자체마다 기준 각각 똑같은 생선뼈인데 서울은 종량제 봉투에 춘천은 음식물 쓰레기
겉치레에 급급하면 가치는 사라지고 도구인 법만 남아
쓰레기만 그럴까
얼마 전 환경 전문가의 칼럼을 읽었다. 요지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해서 너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환경 오염에 그다지 큰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거의 배출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영국의 논문을 인용한 칼럼니스트의 주장은 이렇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방치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총량은 5210만 톤이다. 절반 가량은 소각되고, 나머지는 흩어져 오염을 유발한다. 인도,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 등이 수백만 톤씩,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1000만 톤 이상을 배출한다.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의 선진국은 모두 합쳐 45만 톤 정도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국민 1인당 방치 플라스틱 쓰레기 양의 비율은 100 대 1이다. 하천을 통해 바다로 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연 100만 톤으로 추정할 때, 필리핀은 35% 이상을 단독으로 배출한다. 한국은 겨우 387톤이다. 우리의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무려 80% 수준이다.
이삼 년 전의 다큐멘터리를 다시 돌려본다. 플라스틱 재활용에는 소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출하는 양까지 포함한다. 수출 대상국은 플라스틱 배출량이 아주 높게 집계되는 동남아 저개발 국가들이다. 쓰레기는 수입국이 아니라 수출국에서 돈을 낸다. 쓰레기 처리 요금인데, 실제로는 보관 요금이다. 가난한 나라는 플라스틱을 처리할 비용조차 없다. 오직 그 나라의 땅이 오염을 견디며 쓰레기를 보듬어 경제 수지에 기여하는 것이다. 유해폐기물 이동을 규제하는 바젤협약은 도구로서 역할도 못한다. 2019년 유럽연합 국가가 아시아에 수출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150만 톤 이상이다. 그 직전에 우리나라는 6500톤을 필리핀으로 보냈는데, 그린피스가 적발하여 반송하는 소동을 벌였다. 눈송이 같은 진실의 파편들에 불과하다.
수출하고 남은 쓰레기를 재활용한다고 하는데, 일부 통계는 27%라고 하고, 일부 주장은 겨우 10%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실제로는 극소수의 양이 재활용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나마 재활용하고 난 뒤에는 다시 플라스틱 쓰레기로 남는다. 온갖 통계가 난무하지만, 어떤 유리한 것을 넣고 어떤 불리한 것을 제외하는지 불분명하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플라스틱 관리를 목표로 시민들을 감시 대상으로 삼는다. 페트병은 본체, 레이블, 뚜껑을 분리하도록 지시한다. 비닐에도 찢어지는 것과 늘어나는 것이 다르다고 교육한다. 상품을 제조하여 판매하는 회사는 한쪽 귀퉁이에 갖가지 기호와 표시로 장식하며, 시키는 대로 잘 따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나선다. 플라스틱을 팔아 돈을 벌면서, 플라스틱으로 인한 오염은 마치 소비자가 처리를 잘못해서라는 식이다.
분리배출의 양상도 비슷하다. 2013년 처음 도입된 음식물 쓰레기 분리배출제가 환경 보호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시민을 상대로 한 눈가림용 훈련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도 만만하지 않다. 바나나 껍질은 서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고, 군산에서는 아니다. 춘천에서는 생선뼈를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하지만, 서울에서는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려도 된다.
환경부에서는 쓰레기 관리 자체를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지방자치단체는 저마다의 판단에 따라 기준을 마련한다. 조례, 규칙, 법령으로 제도를 짜맞춘다. 규범은 만들어 놓으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스스로 태생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에 제정의 취지를 성취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한다. 규범을 만드는 입법자들이 단면만 보고 겉치레의 성과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가치는 사라지고 일시적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법이 되어가고 있다. 쓰레기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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