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수범자와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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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4-04 10:48 조회3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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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평론가들의 궤변과 현란한 언변이 정치 양극화 부추겨
공직자는 헌법 수범자 국민은 수호자인데 국민이 헌법 지켜야 정상 국가된다는 말은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책임 회피 의도일 뿐
독재 시절 겪은 한국 그때나 지금이나 계엄 규정 변함없는데 과거 행태 답습한 권력 수호자가 판단할 처지
감시할 의무 있는 국민은 고단하다
앙드레 지드가 10대 후반일 때 프랑스는 제3공화국에 접어들어 혼란과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중이었다. 초기에는 공화파와 왕정파 사이의 논쟁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 즈음 어느 날 지드는 사촌들과 숲속을 드라이브했다. 누가 지드에게 물었다. “넌 왕당파야, 공화파야?” 이전에 “가톨릭이냐, 개신교냐?”는 질문에 곤욕을 치른 바 있던 지드였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있었다. “공화파야.” 프랑스는 공화국이니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왕당파였던 사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지드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가 말했다. “다음에 또 사람들이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거든, 헌법의 수호자 편이라고 대답하렴.” 지드가 헌법 수호자는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모르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그러니 그렇게 말하면 더 이상 묻지도 않을 거야.” 정치적으로 양분된 분위기에서 뭔가 중립적이면서도 침해 불가능한 듯 보이는 헌법수호파의 제안은 법대 교수를 남편으로 둔 어머니 쥘리에트의 재치 넘치는 발상이었다.
헌법을 지키는 일이 정파적 의견의 한쪽에 서서 싸우는 일보다 국가나 자신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자기가 가담한 편의 정치적 판단이 절대 옳다는 믿음이 문제일 따름이다. 정치적 양극화 현상도 근본적으로는 정치인과 그에 동조하는 정치평론가들의 궤변적 논리와 현란한 언변이 정치를 감시하려는 시민을 일시적으로 현혹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헌법은 애당초 국가 구성원 모두를 수범자로 전제한 규범이 아니다. 국가권력 기관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만든 것이 헌법이다. 그 목적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이다. 국가권력 기관을 담당하는 공직자는 헌법의 수범자이며, 국민은 헌법의 수호자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국민은 법을 지키면 되지 헌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헌법을 지켜야 할 지위에 있지 않다는 말 이다.
그런데 가끔 헌법 질서를 외치며 모든 국민이 헌법을 제대로 지켜야 국가가 정상화될 것처럼 호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헌법을 지켜야 할 고위공무원과 정치인들이 그 책임을 은근히 국민들에게 전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마치 자기 정파의 정견에 따르지 않는 여론 탓에 헌정 질서가 흔들린다는 듯 질타하고 계몽하려 든다.
헌법 수호자는 헌법 수범자가 제대로 헌법을 지켜 이행하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야말로 헌법수호자의 유일한 헌법적 의무다. 헌법 질서가 흔들리는 일이 잦으면, 헌법이 파괴된다. 프랑스는 제3공화국 이전 제정시대에 쓰라린 경험을 했다. 임기 10년의 제1통령이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미리 재선까지 확정해 20년의 통치 기간을 확보했다. 그것도 모자라 종신 대통령제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자의 찬반 의사가 대장에 표기되는 공개투표였다. 뒤이어 직접 제출한 헌법 개정안을 심의 없이 통과시켜 원로원과 호민원을 완전히 장악했다. 헌법옹호자로 자처한 보나파르트는 그렇게 헌법파괴자가 되었다.
다른 나라의 사건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경험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헌법의 비상계엄 규정은 변함이 없는데, 지난날 독재 행태를 답습한 권력 행사가 재현됐다. 국민들은 각자 수호와 파괴의 양상을 판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대통령도 국회도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도 헌법 수범자인데, 헌법 수호자로서 판단의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과제를 피할 길 없이 부여안아야 한다. 수호자의 의무가 고단하기만 하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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