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대학 밖에서 공부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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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4-04 10:48 조회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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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떠난 지 만 5년이 넘었다. 교수가 공부할 시간이 없다며 사표를 냈지만, 나온 다음 딱히 공부가 깊어진 것 같지는 않다. 대학만 떠나면 원 없이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세상이 그리 만만할 리 없다. 대학 제도는 연구자를 얽매는 대신 약간의 보호막도 드리우는 법이다. 신분, 동료, 연구실, 무엇보다 매달 입금되는 월급 말이다.
대학 밖에는 무한한 자유가 있지만 어떤 보호도 없다. 그저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대학 안의 공부만큼이나 대학 밖의 공부도 위태롭다. 자기 사정에만 매몰되면 서로의 이해와 연대는 아득해진다. 대학 밖에서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들 이야기를 굳이 대학 매체에 알리는 까닭이다.
대학 제도 밖에도 글 쓰고 강의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무척 많다. ‘독립 연구자’는 소수다. 시인, 소설가, 수필가, 번역가, 평론가, 그림책 작가, 청소년책 작가, 극작가와 시나리오 작가, 만화나 웹툰 작가, 그림·일러스트 작가 등 참으로 다양한 작가들이 있다. 협회 등에 소속된 이들도 있겠지만, 혼자인 경우도 적지 않다. 나 같은 전업보다는 겸업이 많을 것이다. 웹툰 시장 같은 예외가 아니라면, 대개 생계가 힘들 정도로 시장 사정이 열악한 탓이다.
전업 작가로 살기는 왜 어려울까? 한국 작가의 경쟁력이 낮기 때문일 수 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한국 사회가 선호하는 시장 원리에 비춰보면 이들의 낮은 수준은 낮은 보상의 결과일 것이다. 물론 이와는 역의 인과관계도 가능하다. 어느 쪽이든 보상이 낮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순서를 따지기보다 이 사실 자체에 천착해 보자.
우선 한국인은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 ‘2023 국민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성인의 비중은 43%에 그쳤다. 10년 전에는 72%였다. 경쟁력 논리대로라면 독서율 저하는 그사이 작가들의 경쟁력이 급속히 낮아진 탓이리라. 과연 그럴까? 아무튼 출판업계는 해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갱신 중이다. 독서하지 않는 이유로는 “책 이외의 매체 이용”과 “책 읽기가 재미없어서”가 과반을 차지한다.
40대 이상부터 독서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성별 차이는 크지 않은데, 다른 조사들을 보면 적극적 독자층은 여성이 훨씬 많다. 즉 중년 남성이야말로 가장 책을 안 읽는 집단인 것이다. 대학 교수도 중년 남성의 비중이 매우 높은 집단이다. 당사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중년 남성이 왜 책을 읽지 않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기 작가가 아니라면 인세, 원고료도 매우 박하다. 물가는 해마다 오르지만, 원고료는 오랫동안 오르지 않았다. 그나마 책값에 연동되는 인세는 책값 인상 덕분에 오른다. 대신 발행 부수가 크게 줄었다. 2013년까지 2천 부가 넘던 권당 평균 발행 부수가 2021년에는 1천236부에 그쳤다. 책 한 권에 평균 2만 원 정도인데, 인세 10%라고 가정하면 책 한 권 쓰더라도 대략 250만 원쯤 번다는 말이다. 이걸로 살 수는 없다.
작가들의 생계에 조금 도움이 되는 것이 강연료 수입이다. 도서관, 평생학습관, 각급 학교, 서점, 시민단체 등 불러주면 어디든 간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못 되는 ‘호출직 노동자’인 이유다. 유명 강사가 아니라면 강사료는 공공기관이 책정하는 강사 수당 지급 규정이 준용된다. 쇠고기처럼 특1급(장관급), 특2급(차관급), 1급(4급 이상) 등으로 등급을 매긴 신분제다. 나는 교수 출신이라고 1급 대우를 받는데 두 시간에 37만 원 정도다. 여기에 원고료가 몇만 원 붙고, 교통비를 더해주면 고맙다.
오래도록 인상 없이 요지부동인데 그마저 작년부터 공공기관의 강연이 대폭 줄었다. 섭외하면서 강연료를 알려주지 않는 곳도 있고, 교수가 아니라며 강사료를 낮게 책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많이 준다는 공공기관이 이렇다.
이런 대우를 받는데도 왜 작가는 세상을 향해 글 쓰고 말하려는 걸까? 각자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거기서 삶의 의미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선택한 길이니 이 정도 어려움은 감내해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글과 말에 대한 보상이 이토록 낮고 위태로운 것을 당연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작가들이 마침내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며 준비 모임을 만들었다. 혼자서 외롭던 나도 가입했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이다. 대학도 어렵다지만 어려운 이들이 더 어려운 이들을 돕곤 한다. 이들이 낼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엄중한 시국에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았기를 바랄 따름이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5년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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