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무엇이 우리 사회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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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4-04 10:49 조회2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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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법적 절차 속 출발한 대한민국 독재 시절엔 탈법 난무 성장 담보 기본권 억압 정권연장 위한 개헌도
그뒤 시민 세력 성장 사회변화 이끌기 시작
과거 청산 나섰지만 많은 논란과 부작용
이젠 법과 재판 결과가 논쟁 대상으로 부상
법치주의의 미래 근본 성찰 필요하다
“법대로 하자”는 구호가 유행인 때가 있었다. 무엇이든 법대로 되지 않았고, 언제나 불만이 가득한 현실 때문이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일본 패전의 반사적 이익처럼 주권을 찾았다. 남쪽 절반만 선거를 치르고 헌법을 제정했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재임 중 두 차례 개헌을 했다. 피란 간 부산에서 재선을 위해 한 번 부결된 개헌안을 발췌하여 다시 제안하고, 비상계엄 아래서 공고 절차 없이 기립표결로 통과시켰다. 두 번째는 더 터무니없었다. 영구 집권을 노린 개헌 시도는 한 표 차이로 부결됐다. 다음날 반올림 셈법을 동원한 억지 주장으로 국회 의결을 번복했다. 모두 위헌의 개헌이었다. 결국 부정선거에 항거한 4·19로 물러났고, 새 정권은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로 탄생했다. 18년의 독재는 경제 성장을 담보로 자유권적 기본권을 억압했다. 그 시절 여섯 차례의 개헌 역시 유신에 이르기까지 정권 연장이 목적이었고, 과정은 위헌과 위법이었다. 박정희 피살에 이은 전두환의 군사 쿠데타와 집권 또한 마찬가지였다.
법은 하나의 형식에 불과했다. 무법과 위법과 탈법의 정치 현상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의 반작용으로, 법대로만 해도 세상이 달라지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1990년 확정된 망원동 수재 사건은 소송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집단소송과 공익소송의 상징적 출발점이었다. 그 즈음부터 법률 운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이 전개됐다. 소액주주운동은 사문화된 상법 조항을 살려내 경제민주화 운동으로 확산시켰다. 그 힘은 정부의 정책 수립과 집행까지 법의 해석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냈다. 새만금 간척 사업은 착공한 1991년 당시 총공사비가 2조 원을 훨씬 넘는 대규모 국책 사업이었다. 세계 최장 방조제가 완공될 무렵인 2003년 환경단체가 나서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서울행정법원이 받아들였다. 간척 사업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가처분 하나로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환경 훼손을 시민의 힘으로 막았다는 감동과 함께, 사법의 행정권 개입이라는 비난과 우려도 뒤따 랐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해 노무현 정부가 구체화한 과거사 정리 작업은 제주 4·3사건 특별법 제정과 위원회 구성으로 출발했다. 진실화해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등 여러 과거사위원회가 2020년까지 계속 설치됐다. 대법원장이 사법부 과거사 반성과 청산을 약속했고, 검찰과 국정원도 자체 과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으로 종결되는 과정에서 근대사의 여러 국면이 재구성되었고, 재심이 일반화되는 파생 효과가 있었다. 사법부의 판단은 본의와 무관하게 역사적 시선과 사실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도 수행 방식은 여전히 법과 재판이었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 없이 많은 부작용을 낳아, 일상의 공적 행위를 직권남용이나 업무방해의 판단 대상으로 만들고 말았다.
진보 정부 사이에 집권한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는 법치를 통한 민주화에 반동적 제동을 걸었다. 보수적 지지를 기반으로 삼았지만, 결과는 형사재판과 탄핵재판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법과 재판이 우리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재판의 결과 하나하나가 전체 국민의 논쟁 대상으로 부상했다. 법원에 대한 폭동도 일어났다. 모든 것을 법과 재판으로 해결하려 할 뿐만 아니라, 재판 대한 재판도 요구되고 있다. 법치주의에 대한 점검으로 정리될 현상은 아니다. 미래의 법치주의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지 살펴야 할 지점까지 왔다. 우리가 만든 법과 재판제도가 우리의 지혜 범위를 뛰어넘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은 아닐 텐데, 묘안은 안개 속이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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