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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근] 납작하지 않던 우리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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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5-07 11:53 조회5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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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대학생인 것 같았다. 낯선 이들에게 잡혀 운동권 조직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강요받고 있었다.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풀려났고 학교로 돌아와 동무들과 어울렸다. 가는 곳마다 그림자 속에서 그들이 지켜봤다. 도망치려는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벗들에게 알리려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슬픔이 밀려들다가 공포가 가슴을 옥죄어왔다. 아팠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꿈이었다. 새벽 네시 반,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계속 미뤄지며 오만가지 흉흉한 소문이 돌던 3월22일이었다. 몇차례 더 악몽을 꿨고, 잠을 설쳤다.


젊은 시절의 불면증이 중년에 접어들며 신통하게 사라졌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어 아침까지 푹 잔다. 악몽 따위 잊은 지 오래다. 이토록 둔감한데 저렇게 악몽에 시달렸다. 다른 이들은 오죽했으랴. 느닷없이 윤석열이 석방되고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한없이 미뤄지자, 수천만명이 ‘내란성’ 불면증을 앓았다. 마침내 4월4일, 헌재가 전원 일치 판결로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했다. 사필귀정, 한국의 민주주의가 누란의 위기에서 한발짝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사태를 겪으며 단상이 많아졌다. 그중 몇가지를 정리해두고 싶다. 우선 윤석열은 내란은 물론, 직권남용, 공천 개입,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온갖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범죄의 증거가 태산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지른 만큼 처벌받아야 한다.


벌써 용서와 화해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약자에겐 추상같던 이들이 군대를 동원해 주권자를 유린하려 한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나면 ‘민주정권’이 ‘정략’으로 이들을 사면한다. 익숙한 관행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아직 관용이 절실하다. 그래서 관용의 약속을 총칼로 파괴한 자에게 단호해야 한다. 그들로부터 관용을 보호하지 않으면 관용이 살해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렸다. 박근혜 탄핵 때는 62명의 의원이 탄핵에 동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박근혜의 죄과를 아득히 초월한 윤석열의 내란은 적반하장으로 옹호했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 한 의원들을 따돌리고 공격했다. 보수정당으로서 존재 가치를 잃었다. 해체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부활할 것이다. 양당제의 비극적 딜레마다. 다만 이 죄과를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헌재는 선고문에서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고 밝혔다. 전국 곳곳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날마다 싸웠다. 거리가 멀다며, 일상이 바쁘다며 가끔 생색내듯 집회에 참여한 나는 부끄럽고 고마울 따름이다.


내란에 맞서는 싸움을 겪으며 내 생각도 조금 바뀌었다. 처음에는 내란에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가능하게 한 이 체제의 한계에 주목하는 쪽이었다. 어떻게 1987체제를 넘어설 것인가에 내 문제의식이 있었다. 윤석열 일당이 처벌받고 헌재가 명쾌하게 파면 선고를 내리리라는 데 조금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들의 저항은 집요하고 힘은 거대했다. 법원이 공격받고 윤석열이 풀려났으며 선고는 기약이 없었다. 그러자 이 싸움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싸우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87체제라는 이름의 이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밝히자면 이 체제가 중대한 한계에 봉착해 있고 갱신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싸운 이들이 모두 87체제의 지지자라는 것도 아니다. 바뀐 것은 이 체제를 지키려는 이들에 대한 내 생각의 일단이다. 나는 87체제의 지지자들이 민주주의 수호를 주장하는 만큼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불균형에 문제의식을 가져왔다. 불평등 이슈를 미루기 위한 알리바이로 민주주의 위기를 강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 한 자락이 있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87체제의 이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는지 절감했다. 많은 이들이 피 흘려 쟁취한 민주주의를 ‘한계’라는 말로 가볍게 치부할 수는 없다.


87체제가 강인한 이유는 그것을 만들고 지켜온 이들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접한 젊은 진보정당 활동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명문대를 나온 전형적인 386인 집안의 여성 어른은 민주당도 아니고 진보정당에 참여하는 그가 못마땅하다. 동아리 수준 정당이라며 혀를 찼다. 계엄이 터지고 얼마 후 식사 자리였다. 1980년대에 전경에게 잡혔던 경험, 싸우다 죽은 이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길래 흔한 386 무용담인가 보다 했다. “내가 계엄 얘기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니? 집에 불부터 끄는 거였다. 그리고 어디로 피신해야 할지 생각했어. 그냥 바로 그렇게 되더라고.” 수십년 일상을 살아온 평범한 이들이 계엄이라는 한마디에 그 시절로 돌아갔다. 이웃 한명은 계엄 뉴스를 듣자마자 국회로 달려가 최초의 수호대가 되었다. 날마다 광장에 나간 이들이 여럿이었다. 이 체제의 원동력이다.


글을 시작할 때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개헌 등 체제 개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싶었다. 그사이 정치권에서 개헌 논란이 터지더니 곧 정쟁이 됐다. 내가 바라는 개헌, 체제 개혁의 상과도 다르고, 개헌을 절실히 요구하는 아래로부터의 동력도 보이지 않는다. 시세에 어두운 내가 낄 판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아래쪽 낮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들리게 할 수 있을까, 내 몫의 고민에 주력하자.


이번 사태의 와중에 불평등 심화에 주목하며 87체제의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진보연하는 지식인의 겉멋 부리기로 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87체제를 목숨 걸고 지키려는 이들을 고작 기득권자라며 납작하게 보았던 내가 따질 일이 못 된다. 어느 쪽이든 겉멋 든 자, 기득권이 된 자가 왜 없을까? 오해였다며 퉁칠 일은 아니고, 그것은 그것대로 가감 없이 비판해야 한다. 이제 곧 대통령 선거다. 이 모든 고민은 실종되고, 권력의 향배에 관심이 쏠릴 것이다. 그래도 반동의 광풍이 부는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킬 때 우리가 납작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서로 기억하면 좋겠다. 그 기억이 선거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


조형근 사회학자 

한겨레 2025년 4월 8일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913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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