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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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5-07 11:54 조회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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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권은 헌법수호 목적 요건 못 갖추면 쿠데타
제헌 뒤 두 번째 탄핵 헌법 바탕한 혁명이며 새 질서의 시작이고 자유 지키기 위한 것
잘못된 권력의 억압 민주시민은 참지 않아 폭력적 정치 퇴장시켜
필요하면 개헌 하지만 새 출발 조건은 아니다
혁명을 잃지 않으려면 우리가 능력 발휘해야
저항권의 발동은 헌법 바깥의 권리를 행사하는 형식이지만, 헌법 질서의 파괴 상황에 맞서 헌법의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정당화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항권은 헌법 밖의 권리이면서 나중에 헌법 질서 내의 행위로 편입된다. 저항권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쿠데타다. 과거에는 넓은 의미에서 저항권 행사나 쿠데타를 모두 혁명으로 부르는 예도 없지 않았으나, 쿠데타의 정당성 부인을 위해 요즘은 엄격히 구분한다. 저항권이나 쿠데타는 혼란 속에서 폭력이나 무력이 동원된다.
혁명은 기존의 권력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사태만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사후에 용인되는 폭력을 수반하지 않아도 정치 변혁에 따른 정권 교체는 혁명이나 마찬가지다. 찬반의 격렬한 의사표시가 오가지만 최소한의 질서가 유지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헌법적 혁명도 있다. 헌법이 허용하는 헌법 질서의 수호를 위한 정권 교체로, 바로 대통령 탄핵 절차가 그것이다. 헌법 제정 이후 벌써 두 번째 탄핵에 의한 정권 교체를 맞았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한 것은 정치 변동으로서의 혁명이다. 허용할 수 없는 정치 행태의 종말과 희망을 걸 수 있는 새 정치 질서의 시작이라는 두 개의 시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균열이 정치 변동이다. 우리는 바로 그 분기점에 서 있다.
정치 변동은 극명할 정도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질서가 없으면 낡은 질서의 붕괴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잘못된 권력의 행사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교체가 정치 혁명이다.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죄에 대한 재판으로 탄핵 절차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그에 대한 형벌로 파면을 선고한 것이 아니다. 형사재판은 나중의 일이다. 우리는 헌법 절차에 따른 혁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그를 내려가게 한 것이다.
혁명의 목적은 자유다. 반란의 목적이 해방인 것과 다르다. 해방은 기본적 권리를 억압하는 상태로부터의 탈출이지만, 자유는 정치 폭력으로부터 벗어남을 말한다. 해방은 자유의 조건일 수 있지만, 민주적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지 못한다. 해방이 보장하는 자유는 사적인 자유다. 혁명이 가져다주는 정치적인 자유는 공공 영역의 자유다. 구체적 정치 행위에 직접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권력자의 잘못된 통치행위로 인해 억압을 느낄 때 민주 시민은 참을 수 없다. 민주적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에서 일궈내는 정치 변동이 헌법적 혁명이다. 그로써 정치적 자유를 회복한다.
폭력으로 뒤집는 혁명은 새 질서를 이끌 절대자의 출현을 기대했다. 과거 혁명들의 역사다. 그러나 헌법적 혁명은 국민이 지난날의 영웅을 대신한다. 주권자 스스로 절대자의 역할을 맡는다. 윤석열 정부를 낡은 사고와 폭력적 정치의 주범으로 판단해 현실의 무대에서 퇴장시킨 결단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근거는 새로 등장할 대통령이 아니라 새 대통령을 선출할 우리들 자신의 의지다.
새 질서에 개헌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개헌은 필요하면 하는 것이지, 새 출발의 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컨대 대통령의 횡포를 막기 위해 비상계엄 권한을 극히 제한하거나 삭제할 이유가 있을까? 헌법에 지금과 같은 규정이 있기 때문에 잘못 선포한 비상계엄과 그 행위자를 동시에 제거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혁명을 단순한 과거의 사건으로 사라지게 만들지 않으려면, 새로운 질서에 대한 열정과 욕망으로 우리의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근대 국가에 살고 있고, 근대 국가는 모두 혁명의 산물이다. 우리는 애당초 혁명적 존재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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