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정치범죄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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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6-04 13:56 조회19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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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치 행위는 범죄처럼 보이고 모든 정치 행위는 범죄로 규정 가능
주권자가 보는 가운데 상대방 이마 위에 낙인 찍기 위한 게임을 정치로 착각할 지경
이기기 위해 반칙 동원 심판에게 압력 행사 경기 도중 규칙도 변경
현실은 옳고 그름 아닌 태도와 선택의 문제 돼
심각하건 사소하건 자연범과 법정범 차이 무의미하게 보여
범죄라고 하면 어감부터 반사회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행위자를 범죄자라고 지칭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응징으로 형벌을 부과하고, 전과자라는 낙인을 찍어 운이 좋은 보통사람들이 의식적으로 기피해도 좋다는 근거를 부여한다.
규칙 위반은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얄미운 행위로 간주한다. 당연히 지켜야 하지만, 위반자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가벼운 벌금형이나 과태료 정도로 충분하고, 나도 상황에 따라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관대해진다.
한때 일본 형법학자들은 범죄를 자연범과 법정범으로 나누었다. 누가 무엇이라 말하기 이전부터 본질적으로 반사회적 성격을 띤 범죄를 자연범이라 하고,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범죄라 규정한 것은 법정범이라 불렀다. 교수의 현학적 기질은 분류하고 체계화하기를 능력으로 삼았고,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구분이 이해하기 쉽고 기억하기에 편했다.
그러나 이분법의 효용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법정범과 자연범의 경계를 명확히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차라리 모든 범죄를 자연범이라고 하든지 법정범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아 보일 때가 많다. 구분의 실익도 딱히 없어, 그 주장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이론사의 족보에만 흔적을 남겼다.
형사정책의 세계에서는 범죄 자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난제다. “이것이 범죄다”라고 분명히 정의할 수 있다면,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도 적절히 세울 수 있으련만. 현실의 눈에는 구성요건만 보일 뿐이다. 법으로 정했으니까 범죄일 뿐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낙인이론까지 등장했다. 한 사회의 사법 체계에서 범죄라고 낙인을 찍으면, 그 행위가 범죄가 된다.
논리나 해석의 영역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정반대로 모든 범죄는 자연범이라고 우길 수도 있다. 현대판 성악설이라고나 할까, 경쟁 사회에서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범죄나 다름없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론적 행위 중에서 정도와 필요에 따라 법으로 선택한 것이 현실의 범죄다.
이론과 관념으로 떠돌던 범죄의 개념이 어느 새 일상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온갖 매체의 실시간 보도로 모든 범죄와 모든 행위의 범죄 가능성과 모든 범죄의 무죄 가능성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의 각론에 해당하는 하나가 정치의 범죄화와 범죄의 정치화인 셈이다. 모든 정치 행위는 애당초 범죄 행위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정치 행위는 범죄 행위로 규정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범죄의 낙인을 상대의 이마에 먼저 찍기 위한 게임이, 주권자들이 관전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정치라는 행위로 착각될 지경이다.
경기가 치열해질수록 결과에 대한 예단과 간섭도 극단으로 치닫는다. 반칙을 동원하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태도가 첫 단계라면, 심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압력까지 불사한다는 저돌적 자세가 그 다음이다. 거기서 여의치 않으면, 경기 도중이라도 규칙을 유리하게 바꿔바리겠다는 과감한 단계가 세 번째다.
복잡한 현실은 이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세와 태도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다. 경기자나 심판이나 관전자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느냐가 더 문제다. 심각한 사태건 사소한 일이건 자연범과 법정범의 차이가 무의미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고민에 도움이 될지 모르나, 장용학의 단편 <요한 시집>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읽어 본다. “존재는 범죄이다. 그 총목록이 세계이고, 인생은 그 범죄자였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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