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민주국가와 공화국의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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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8-06 13:14 조회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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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도덕적이면 치열한 경쟁서 불리 집단이 도덕적이면 다른 집단보다 유리
균등 기회만 보장되면 경쟁은 합법이라는 신자유주의 개념은 승자만의 특권 돼 움츠러든 패배자들은 생물학적으로 보수화
헌법 제1조가 규정한 민주공화국의 의미는 특권에 예속되지 않는 모두의 공동체 의미
내가 찍어 당선됐든 미운 자가 당선됐든 양쪽의 민주주의가 공존해야 진정 공화국
민주국가이자 공화국 어떻게 건설할지 제헌절에 생각한다
우리 지도자를 내가 직접 뽑는다.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그럴까 싶기도 하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내가 대통령으로 임명한다면 환상적이겠지만, 나는 한 표를 행사할 뿐이다. 개표 결과 내가 투표한 후보자가 당선되면 내가 임명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자유롭게 한 표를 던지는 행위가 민주주의다. 개별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특정 후보를 당선시켰다면, 그것은 집단민주주의다. 별것 아닌 것 같은 개별민주주의가 집단민주주의에 포함되면 영향력이 커진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흥미롭다. 개인이 도덕적일 경우는 치열한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기적인 사람에게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집단이 도덕적일 때에는 다른 집단보다 경쟁에서 유리하다.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의 배달 상자에 불과하다면, 저마다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인간의 집단은 개인을 위한 이익보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때가 있다. 자연선택에서 그러한 집단선택이 개별선택보다 유리한 경우가 있다는 것이, 《종의 기원》 이후 다윈의 수정된 견해의 하나였다.
한동안 인간이 자기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이타적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신다윈주의의 집단선택론이 기세를 올렸다. 예증과 반증이 엎치락뒤치락하던 끝에 결국 개별선택 이론이 우위를 점했다. 그에 동조하듯 경제학계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경제활동을 개인의 자유에 맡겨 놓으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그것이 모여 전체적으로 최대의 이익이 된다는 논리였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체의 조화를 위한 조절이나 규제보다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라는 현상이 생겼다. 최대한의 자유는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으로 합리화되었다. 타고 났거나 노력에 의해 얻은 능력에도 불평등한 불공정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은 검토할 틈도 없이, 균등한 기회만 보장되면 경쟁은 합법이라는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의 핵심처럼 자리잡았다.
그러다 보니 자유마저 경쟁에서 이긴 소수들만의 특권이 되고 말았다. 경쟁에서 진 사람들은 반발하여 혁명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순응하고 스스로 패배자 또는 피해자로 여겨 움츠러든다. 인간유전체학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과학자 최정균의 표현을 빌리면, “생존에 위험을 느끼는 불안한 환경 속에서 교감신경과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생물학적으로 보수가 된다.” 정당부터 개인까지 대체로 보수화하는 현상이 이해된다.
여기서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흔히 정체와 국체로 나누어 민주는 의사 결정 방식을, 공화는 주체라고 설명한다. 결국 민주국가와 공화국은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다. 민주국가가 과정이라면, 공화국은 그 목적이나 결과다. 그러나 공화국의 의미는 달라야 한다. 특권에 예속되지 않고 최대 수혜자와 최소 수혜자 사이의 차이를 최대한 줄여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정치공동체를 공화국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다수가 어느 정도 합의한 공동선을 사회 정의로 상정하고, 그 실현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조화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공화국이다.
민주국가에 치우칠 때 공화국의 실체는 희미해질 수 있다. 내가 투표한 사람이 당선된 민주주의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당선된 민주주의는 같은가, 다른가? 두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 국가가 공화국이다. 개별 투표가 모인 상대적 다수의 집단선택이 공공의 이익을 증강시켜야 한다. 민주국가임과 동시에 공화국인 국가의 건설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색해 보는 일이, 제헌절의 사색 또는 공상이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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