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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핑둥현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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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9-05 12:45 조회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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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대만에서는 제3원전 마안산 2호기 재가동의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앞서 5월18일 마지막 가동을 마치면서, 총 8기 원자로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비핵가원’(非核家園·핵발전소 없는 나라) 대만을 알렸던 바로 그 발전소다. 그러니까 대만의 탈원전을 계속하느냐 아니냐를 묻는 상징적인 투표였다.


결과는 재가동 찬성이 74.2%에 달했지만 총유권자 수 대비로는 21.7%에 해당해 부결이었다. 대만의 국민투표법은 찬성이 반대보다 많을 뿐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투표율이 29.5%에 그쳤기 때문에 거의 모든 투표자가 찬성해야 가결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한국의 적지 않은 언론은 대만 국민 4분의 3이 재가동에 찬성했으므로 민진당의 탈원전 정책이 좌초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다분히 피상적이고 편향적인 분석이다. 우선 이 투표는 대만 야당들의 정치 공세 수단으로 실시된 것이었다. 마안산 2호기의 발전량은 대만 전력 공급의 4% 정도에 불과하므로 이 발전소 재가동 여부는 전력 수급이나 전력 가격에 유의미한 영향을 갖지 못하며, 다른 원전의 재가동은 전혀 검토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가결됐더라도 안전성을 다시 점검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대만전력의 동의도 있어야 하기에 투표 결과 자체가 원전 재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국내 보도에서 누락된 것은 대만 유권자의 70%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에너지 정책이 정쟁에 활용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오랜 논의와 정치 진통 끝에 확정된 탈원전이라는 결론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의사 표현이다. 그렇더라도 대만 여론이 탈원전에 마냥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결국 이번 투표 결과는 원전을 추진하려는 정치 세력에나 탈원전을 이어가려는 사회운동에나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봐야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제3원전의 소재지인 대만 남쪽 핑둥현의 목소리다. 핑둥은 주민의 40%가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고 품질이 뛰어난 파인애플 등 내수와 수출 작물의 주산지다. 저우춘미 핑둥현장을 비롯한 주민 대표들은 이번 국민투표 과정 내내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헝춘 단층 위에 자리한 제3원전이 가동된 지난 40년간 요행스럽게 사고를 피했을 뿐,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실제 오염 여부와 관계없이 ‘평판 손상’만으로도 지역 전체의 생계와 수출 시장을 파괴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이들은 재가동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 발전소의 재가동이 68만명의 핑둥 주민이 아니라 2000만 대만 국민의 결정에 맡겨지게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북부의 이익을 위해 원전을 남부에 떠맡기는 구도는 위험의 조잡한 외주화이며 민주주의를 가장한 부조리라고 항변했다.


이런 장면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전국의 핵발전소 지역, 핵폐기물 처분장 검토 지역, 송전탑이 지나는 밀양·청도 등은 이른바 전 국가와 국민의 이익과 경제성장이라는 당위를 위해 위험과 피해를 강제로 하청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와 같은 절차는 소중하지만, 에너지 민주주의는 다수결보다 훨씬 주의 깊은 것이어야 한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25년 8월 28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8211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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