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근] 진영론은 어떻게 학문을 폐허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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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9-05 12:46 조회2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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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 때 육군사관학교가 교내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려다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육사가 아니라 국방부 차원에서 추진한 일이었고, 사실은 정권의 의지가 투영된 사건이었다.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관련됐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따위의 핑계를 댔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셌다. 논란만 일으키다 정권이 붕괴하고 난 뒤 없던 일이 됐다.
역사가 정치와 무관한 청정 구역일 수는 없지만, 역사 해석이 특정 진영의 정치적 목적에 종속되어서도 안 된다. 서로 거리와 긴장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 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이 거리가 무너졌다. 두 진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 한복판에 건국절 논란, 임시정부 법통 논쟁이 있다.
대립 구도는 간단하다. 소위 ‘진보’는 1919년 삼일운동의 성과로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본다. 헌법 전문이 규정하듯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가 그 법통을 계승한다. 소위 ‘뉴라이트’는 영토도 국민도 주권도 없었다며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실체적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에 건국됐다고 본다. 전자는 시종일관 임시정부를 지키고 이끈 김구를 경모하고, 후자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숭앙한다.
당사자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역사학자 이용기의 논문 「임정법통론의 신성화와 대한민국 민족주의」를 통해 살펴보자. 과연 김구 등 임정 세력은 해방 정국에서 “기미년에 전국민 총의로써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한국의 주권을 계승한지 이미 30년이 된 법통정부”라며 임정법통론을 소리 높여 외쳤다. 좌익과 미군정에 맞선 강경우익의 입장이었다. 역시 강경우익으로서 김구와 정치노선이 가깝던 이승만도 임정법통론에 합세했다. 하기는 이승만이야말로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 아니었던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현실화되면서 구도가 급변한다. 이승만 세력이 헌법 전문에 임정법통 계승을 명기하며 강조한 반면, 김구는 “남북통일정부를 수립하여야만 되며 현재의 반쪼각 정부로써는 계승할 근거가 없다”면서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부인했다. 막상 집권 후의 이승만은 임정법통 계승에 무관심했고, 박정희는 헌법 전문에서 이 문구를 아예 삭제했다. 임정법통 계승론에 불을 지핀 것은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었다.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보수 학자들이 애를 썼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현행 헌법을 제정할 때 임정법통 계승 명기에 대해 여야 간에 별 논란이 없었던 이유다.
반면 오랫동안 임정법통 계승론에 비판적인 쪽은 진보학계였다. 임시정부에 삼일운동의 총의가 모였다고는 하나 한계도 뚜렷했다. 독립적으로 활동하던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 등이 삼일운동의 총의 위에서 1920년의 봉오동, 청산리전투를 치렀다. 하지만 머지않아 무장투쟁노선 대 외교노선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무장투쟁론자 대다수는 임시정부를 떠났다.
이후 만주 등지에서 이어진 무장투쟁은 대개 임시정부와는 독립적으로 수행됐고, 형식적 관계가 있어도 실질적 연계는 없거나 약했다. 독립운동세력이 광범위하게 통일전선운동을 벌일 때면, 임시정부가 자임한 ‘유일한 최고기관’이라는 지위가 수평적 연대의 걸림돌이 되곤 했다. 무엇보다 아래로부터의 민중의 삶과 투쟁에서 역사의 의미를 찾는 진보에게 국가 계승의 ‘법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위로부터의 형식 논리는 낯설고 이질적이다. 이름 없는 민중의 현실과는 거리감이 있는 논쟁이다.
물론 임시정부를 일개 독립운동 단체로 폄하하기는 어렵다. 그 상징적 의미와 구체적 실상이야말로 진지한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다. 뉴라이트와의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고, 역사 해석이 이분법의 전쟁터가 된 후 임시정부나 김구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는 이제 뉴라이트로 몰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됐다.
“광복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광복절 기념사가 논란을 빚자, 강경한 이분법 언사로 유명한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역시나 초강경 버전의 임시정부 법통계승론을 꺼냈다. 임시정부 법통계승론 부정을 ‘역사 내란’으로 규정하고, 역사 내란 세력을 척결(!)하겠다고 다짐했단다. 정 대표의 발언대로라면 임정법통론에 비판적인 나 같은 사람도 내란 세력으로 간주되어 척결 대상이 된다. 평생 뉴라이트 논리와 맞서왔건만.
반쪽의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구였다. 그의 권위에 기대 임정법통 계승론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역사는 끊임없는 논쟁과 해석, 재해석에 개방된 광장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다툼과 비판이 필수다. 역사가 공유재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어떤 위인도, 거대한 권력도 역사를 사유화하고 독점할 수 없다. 생각이 다른 이를 척결할 수도 없다. 그저 홧김에 내뱉은 실언이기를 바란다. 차마 그 진영의 분위기 전반이 이럴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조형근 사회학자
교수신문 2025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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