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관]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이라는 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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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9-05 12:46 조회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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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삼례 그림책미술관에 강의를 다니던 작년이었다. 농촌의 읍 단위에서는 드물게 시를 읽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신선한’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드나들게 된 것이다. 처음에 통합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도대체 이 식상하고 진부한 상상력은 언제쯤 사라지나 답답하기만 했다.
완주군은 동쪽 지역인 동상면 사봉리에서 만경강이 발원하는 지역이다. 고산면에서 북쪽 물길과 만나 ‘강’이라는 지위를 얻는 이 강물이 완주군을 빠져나가기 전에 소양천과 전주천을 받아들여 전라도 북부 지방의 젖줄이 된다. 강이 흐르다 범람하다 하면서 만들어진 평야를 충적평야라고 하는데, 완주군의 경우 봉동읍에서 시작돼 삼례읍에 이르는 널찍한 들판이 생겼다. 강을 중심으로 하자면 호남평야는, 동진강과 섬진강 상류를 수원지로 둔 호남평야 ‘남접’과 만경강 중심의 호남평야 ‘북접’으로 나눌 수 있다.
1894년에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바로 동진강과 만경강이 만든 들판이 일으킨 것과 진배없다. 그런 차원에서 삼례는 동학농민혁명의 불길이 북쪽으로 향하자면 자연스레 거쳐야 하는 들판이었다. 전봉준에 대한 심문 기록인 ‘전봉준 공초’에는 전봉준이 삼례에서 2차 봉기를 일으킨 이유로, 삼례가 교통의 요충지이며 사람들이 머물 주막이 많다는 진술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초기만 해도 삼례, 봉동 지역에 비해 하류에 있는 익산이나 군산 지역은 농토가 거칠었다. 도리어 서해의 만조 때 바닷물에 침수되기도 해 익산 지역의 일본인 지주 후지이 간타로는 농토를 개간하는 데 ‘일본도와 권총’을 동원해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면에 삼례와 봉동 지역은 만경강물을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진즉부터 옥토였다. 따라서 전봉준의 삼례 선택은 여러모로 전략적이었다.
통합 땐 만경강 하천 습지 위협
모든 강의 보존이 필수적인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이기도 하다. 2007년 기준, 전 세계 육지의 5~8%에 불과한 습지가 매년 830Tg(테라그램), 즉 8억3000만t의 탄소를 흡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2024년 환경부 산하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의 조사에 의하면 2.62㎢의 넓이인 우포늪이 11만6000t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량으로는 42만3703t이다. 아울러 국내의 현존 습지가 우포늪과 동일한 환경이라면 5106만6564t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이는 2021년 기준 광물산업(2897만t)과 화학산업(3347만t)이 배출하는 연간 탄소량의 80%를 넘는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만경강의 강변이 인상적인 하천 습지이기 때문이며 특히 완주군 구간 중에서 산천 습지는 이미 2019년에 전라북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등에서 그 가치를 주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으로 인한 도시화는 언제고 만경강 하천 습지를 위협할 수 있다. 이는 기후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는 현재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익산시는 만경강 수변도시 조성 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전주시와 완주군을 통합하고 난 다음에 익산시와도 통합해 메가시티를 만들자는 망상도 등장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전주시와 전북도가 만경강을 보존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지만, 전주시는 이미 전주천의 버드나무를 베어버린 데 이어 물억새와 갈대도 ‘벌초’한 에코사이드(ecocide)를 저지른 적이 있고 익산시는 만경강 수변도시 조성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도시화는 필연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강이 지역 주민들에게 주는 정서적, 문화적 가치(조금 더 창조적으로 생각하면 경제적 가치까지)가 도시화보다 백배, 천배 더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은,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문제다.
자연생태계, 도시화보다 큰 가치
9월 초 즈음에 전북지사 김관영, 전주시장 우범기, 완주군수 유의태와 전주 지역구 의원 이성윤, 완주 지역구 의원 안호영 등이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라는 소식이다. 죄다 임기가 정해진 선출직들이다. 지극히 피상적인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를 떠나 고향의 미래가 무엇인지 깊고 현명한 대화가 오가길 바란다.
현대 생태학의 초석을 다진 인물인 미국의 생태학자 유진 오덤은 저서 <생태학>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도시에서의 삶이 유지되려면 도시에서 생산된 부의 일부는 자연 및 농업 환경을 보전하고, 보조하며, 수선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도시의 농촌 정복이 아니라 농촌을 살려서 도시와 농촌이 지금보다 더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전북도와 전주시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려고만 한다.
나는 전주시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지냈고 완주군에서 청소년이 되었다. 어머니와 동생은 지금도 완주군민이다.
황규관 시인
경향신문 2025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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