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직] 자연적 꿈과 인위적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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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09-05 12:46 조회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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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인위는 모방하며 서로 경계 넘나들어
자연에서 불가능해도 그림으로 가능하고 인위적인 노력이 자연을 뛰어넘기도
교육과 규범 통해 형성된 인간사회 자연을 강조하면 질서가 흐트러지고 규범을 강조하면 획일적인 사회 돼
정치 사회 개혁은 법과 제도에서 시작 가치는 운용에서 나와 결국 모든 것은 하늘 아닌 인간 문제
흔히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한다. 잘 그린 그림은 “진짜 같다”고 한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인위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본질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18세기 조선의 문장가 조귀명도 그런 비유의 내면을 독특한 사유 방식으로 파고들었다. “진짜 산수는 그림과 비슷하기를 바라고, 산수 그림은 진짜와 비슷하기를 바란다. 진짜와 비슷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귀히 여긴 것이요, 그림과 비슷하다는 것은 기교를 숭상한 것이다. 하늘의 자연스러움이야 원래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법이지만, 사람의 기교 또한 하늘보다 나은 점이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 살아가면서 자연을 모방한다고 여겨 자연적인 것을 인위적인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한다.
음식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따진다. 생선이 자연산이냐 양식이냐를 놓고 시비가 붙는다. 블라인드테스트를 하면 구분하지 못하는데도, 자연산이 훨씬 비싸다. 시골에 사는 어느 시인은 낚시로 잡은 생선 한 마리를 동네 횟집에 가져가 양식 서너 마리와 바꿔 먹는다고 했다.
인간 자체도 자연스러운 존재와 인위적 존재로 구분할 때가 있다. 어린아이 같은 인간 본연에 가까운 모습과 교육을 받은 어른의 상태를 비교한다.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는 의미로 순수하다는 평가를 하지만, 교육을 받지 않아 교양이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야만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교육을 많이 받고 경험이 많아 신사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은 도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예측가능성이 있어 불안하지 않다. 교육을 통해 규범적 인간을 키우는 것은 바람직한 면이 있는 반면 개성을 잃게 만든다. 모든 구성원을 말 잘 듣는 모범인간으로 성장시키면 전체주의 사회나 다름없다. 개성을 살리면서 일정한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는 통일성이 인간 사회의 이상적 목표다.
놀랍게도 거기에 필요한 규범도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으로 나눈다. 조리나 사물의 본성 같은 자연의 질서가 있다고 믿어 자연법 사상이 등장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인간 이성에 의존하는 실정법을 만들어 사용한다.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비교하는 일은 우리의 습관 중 하나다. 비교하는 이유는 대개 자연적인 것을 칭송하기 위해서지만, 반대인 경우도 버금간다. 흔히 자연을 위대하다고 하지만, 인간의 재능과 성과도 위대하다.
정치나 개인의 삶에서는 자연적인 것보다 인위적인 것이 우세한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을 잘 가꾸면 효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되새겨 보면 조귀명의 글 이면에는 인위적인 것의 힘을 강조하는 의미가 숨어 있다.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림 속의 물이 흐르지 않고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탓한다. 물이 있는데 흐르지 않게 할 수 있는가? 바람이 있는데 불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이는 조물주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림에서는 할 수 있다.”
저 먼 하늘 위로 떠 가는 구름은 자연적인 것이다. 그 아래 구름을 숨겨주는 산도 자연적인 것이다. 능선을 그리는 나무들은? 당연히 자연적인 것이다. 그 나무가 작년 식목일에 심은 것이라면? 50년이나 100년 전에 심었다면? 사람이 심은 나무에서 떨어진 씨가 자라난 나무라면? 결국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의 구별도 인위적이다.
개혁은 법과 제도를 바꾸면서 시작된다. 법이나 제도에 자연적 이상형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다. 인위적으로 잘 만들면 플라톤이 꿈꾼 것보다 나을 수도 있다. 법과 제도 자체는 어떤 형식으로도 가능하나, 그 가치를 매기는 것은 더 인위적인 실제 운용이다. 모두 하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차병직 변호사
법률신문 2025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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