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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플래닛 아쿠아’ 속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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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10-24 10:24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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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석학이다. 세상에 그를 널리 알린 <엔트로피>를 1980년에 펴낸 이래로 23권에 이르는 그의 저서들은 대부분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의 책들이 처음 나왔을 땐 시대에 대한 과도한 단정이나 지나친 예상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십수년이 흐른 뒤쯤에는 그의 주장의 상당 부분이 현실화하거나 적어도 그의 식견에서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고 인정받았다.


그런데 리프킨의 생각 흐름도 상당히 바뀌어왔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그를 3차 산업혁명과 한계비용 제로 사회로 떠올리면서 기술주의적 미래학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책들을 쓸 때도 리프킨은 그냥 첨단기술과 시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게 아니었고, “노동의 종말” 상황을 어떻게 지혜롭게 맞이하고 만들어갈지, 그리고 이를 “유러피언 드림”과 “글로벌 그린 뉴딜”로 갱신하고 확대할지를 고민했다. 더구나 기후위기의 상황에 접어들면서 그의 이야기는 “수소 혁명”을 거쳐 “공감”과 “회복력”의 시대로 나아갔다. 생산성이 아니라 재생성이 더 중요하고, 국내총생산(GDP) 대신 삶의 질 지수(QLI)를 지표로 삼는 ‘재야생화’의 세계를 말하는 게 지금의 리프킨이다.


리프킨의 최근 저서 <플래닛 아쿠아>의 주장들은 더 극적이다. 1972년 아폴로 17호의 승무원들이 촬영한 지구 사진은 아름다운 푸른 구체를 생생히 드러내며 우리 집에 대한 인류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초록빛 대지가 아니라 물의 행성, ‘플래닛 아쿠아’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극히 드문 물의 행성에서 살게 된 덕분에 우리는 생명을 얻고 진화를 하고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가 물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파고드는 이유는 지금 지구온난화가 지구를 이루는 권역인 암석권, 대기권, 생물권과 함께 ‘수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리프킨은 인류가 제방과 댐으로 물을 가두어 지금의 문명과 함께 자연 정복의 세계관, 즉 계몽주의를 형성했지만 이제는 가혹하리만치 변덕스러워진 홍수와 가뭄, 태풍과 해일이 지구의 수권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첨단기술과 인공지능(AI)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특이점을 만들어내리라는 기대는 물 앞에서 무용지물이다. 물 발자국의 제한성은 AI 컴퓨팅의 속도와 정도에도 제동을 걸 것이다. 가상현실은 기껏해야 재야생화되는 지구에 닥칠 물의 재난들을 견뎌내는 데 도움을 줄 항구일 뿐이다. 그의 결론은 플래닛 아쿠아가 흘러가는 파도에 올라타고 그 흐름에 우리를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리프킨의 말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허황되거나 너무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물의 힘이 어쩔 수 없이 커졌고 토건으로 물을 다스린다는 패러다임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4대강을 막아 물을 넘치게 했지만 안동의 산불과 강릉의 가뭄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강을 곧게 펴고 순치해 수상버스를 쉽게 운행할 수 있다는 생각과 욕망도 시험대에 올랐다. 강남역 침수를 막기 위해 대심도 빗물터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무망해 보인다. 한국의 모든 도시, 그리고 서울 또한 플래닛 아쿠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김현우 탈성장과 대안 연구소 소장 


경향신문 2025년 9월 25일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5202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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