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 저항 없는 국민주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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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25-10-24 10:25 조회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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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안보 최종 설계자는 국민이다
성숙한 시민의식 ‘민도’ 깨어있어야
한·미정상회담과 중국 전승절 행사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워싱턴에서는 ‘동맹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부담을 요구하는 미국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베이징 천안문 망루엔 북·중·러 정상들이 나란히 서서 새로운 세력 결집을 과시했다. 이 두 장면 어디에도 이번 정부가 이야기 하는 국민주권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국민주권정부’라 부르고 국익에 우선한 실용을 내세운다.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는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율성과 균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 북핵 문제, 남북관계 등이 얽힌 상황에서 “실용”은 합리적 전략처럼 보인다.
그러나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칭찬외교가 실용인지는 잘 모르겠다.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이 아니라 강대국의 요구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이 실용외교를 더 실용답게 할 수 있다. 아무리 동맹의 신뢰를 강조하기 위한 립서비스라 해도, 그것이 줄 수 있는 건 잠시의 안도와 만족일 뿐이다. 장기적으로는 ‘더 해줄 수 있구나’라는 신호로 작동해 거래 단가만 높일수도 있다. 실제 정상회담 직후에 미국의 관세 압박은 오히려 거세졌고, 우리 기업 기술자들이 조지아 현장에서 구금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립서비스 외교만으로는 국민주권을 지켜내지 못한다.
안보에서 국민주권이란 국가안보를 권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로 돌려놓는 것이다. 안보의 최종 설계자는 국민이라는 인식이 바로 국민주권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의 외교는 강대국의 언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국민에게는 결과만 통보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안보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힘의 언어로 변질되기 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민도(民度)다. 민도는 단순한 지적 수준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정치의 과장된 수사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하게 국익을 판단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강대국들이 우리를 흔들 때, 이를 걸러내고 정부에 책임 있는 선택을 요구하는 힘이 바로 민도의 본질이다. 민도의 성숙은 때로 저항으로 드러난다. 저항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다.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한 민주적 제동이자 성숙한 민도의 표현이다. 저항의 부재는 곧 주권의 부재다.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그 어느때보다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미국은 동맹의 이름으로 우리의 역할 확대를 압박하고, 중국은 대국주의적 제스처로 길들이려 한다. 그 사이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으면, 정부는 강대국의 언어를 그대로 받아쓰며 국민주권을 소모품처럼 취급할 수 있다.
이제는 동맹의 언어가 아니라 국민의 언어로 안보를 말할 때다. 안보의 기준은 워싱턴의 전략 문서나 시진핑의 연설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목소리여야 한다. 외교정책의 목표는 강대국의 환심이 아니라 국민의 평화와 존엄이다. 국민주권안보의 최종 보루는 깨어있는 민도이며, 그 민도가 발휘하는 저항의 힘이야말로 한국을 당당하게 만든다.
저항 없는 국민주권은 없다. 그것은 분열이 아니라 성숙이고, 불안이 아니라 당당함이다. 국민주권에 기초한 깨어있는 민도가 있을 때만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서도 휘둘리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주권정부의 외교이고 위기를 넘어설 힘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경남도민일보 2025년 9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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