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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갑우]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 미중 협력 추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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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작성일14-03-12 15:27 조회20,2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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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12년 후반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한국의 대외정책을 둘러싼 쟁점은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이었다.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기에 발생했던 서해상의 무력분쟁을 생각할 때, NLL에 대한 한국정부의 정책은 선거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새누리당의 문제제기는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대응했고 공약집의 안보정책 분야에서 “NLL 포함 우리의 국토에 대한 북한 등 외부 도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확고한 안보태세를 갖추겠”다고 언급했지만, “NLL에 대한 도발 불용”을 ‘외교·통일정책’의 제1 의제로 설정한 새누리당이 ‘국경프레임’을 선점한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선거 과정에서 등장한 NLL 논란은 안보와 같은 국제정치적 쟁점이 국내정치적 의제로 전화할 때, ‘정치적 중력’이 오른쪽으로 흐르게 됨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NLL 쟁점화의 다른 효과는, 선거 과정에서 대외정책과 관련된 다른 의제의 실종이었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란 한계는 있지만, 선거 과정은 한국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어떤 질서를 만들어갈 것인지를 논의하는 장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의제로서 NLL의 돌출은 미래질서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의 경쟁을 공약집만으로 대체하게끔 했다. 정당보다는 “시한부의 대선 캠프”에 의존하는 선거문화도 ‘긴 호흡’의 외교·안보담론의 생산을 저해한 요인이었다.(2)

또 다른 효과는,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가 투사된 외교·안보정책의 결정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군사력에 기초한 안보정책을 중심으로 그 하위에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을 배치하는 정책조합이다. 국내 정치적 고려를 우선하는 이 정책조합은, 상대방이 있는 외교·안보정책의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생산할 수 있고, 그 결과 국내 정치의 중력을 ‘보다’ 오른쪽으로 향하게 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 예상되는 국내 정치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전임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한다면 그리고 정권의 국내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고자 한다면, 보수정부만이 할 수 있는 진보적 외교·안보정책을 입안할 수도 있다. 진보적인 외교·안보정책은 어떤 국가와 사람의 이익이 적과 적의 위협으로부터 그 국가를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 즉 안보정책을 통해 구성된다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3) 즉 선과 악 또는 적과 친구라는 이분법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의 상호존중과 대화를 통해 평화와 협력의 국제세계를 건설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진보적 외교·안보정책은 목표와 수단의 측면에서도 보편적 가치, 국제적 법치와 다자주의 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수적 외교·안보정책과 구분된다. 박근혜 정부가 제안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이란 외교·안보 담론은, 전임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압정책과 한미동맹 중심의 외교·안보정책보다 상대적이지만 ‘진보적’ 성격을 담지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론을 떠올리게 한다. 

2.
박근혜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동북아의 국제정치경제질서는 지각변동을 하고 있었다. 첫째, 미국은 2010년 후반부터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하고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재균형(rebalancing) 정책’을 추진해 왔다. 미국은 이 정책을 통해, 안보의 증진, 번영의 확대, 민주적 가치의 육성, 인간존엄성의 증진이란 목표를 실현하겠다 말하고 있다.

미국의 재균형정책에 맞서 중국은 2012년부터 언급한 것이기는 하지만 2013년 3월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중 관계의 새로운 형태로 ‘스스로’ 명명한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의 설정을 미국에 요구하던 시점이었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를 미·중이 서로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며 협력하는 국제질서로 정의하고 있다. 중국이 설정한 자신의 핵심이익은 “국가 기본제도 유지와 국가안전보호”, “국가 주권과 영토 수호”, “경제사회의 지속적 안전 발전”이다.(4) 미국은 신형대국관계(new model of major power relations)를, 불가피한 ‘갈등’의 관리 및 서로 이익이 수렴하는 쟁점들에 관한 ‘협력’의 심화라는 두 가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5)

둘째, 국제경제질서도 재편의 시점이었다. 미국과 동아시아는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의 적자를 한중일의 수출중심의 경제와 외환보유고로 상쇄하는 ‘태평양수지균형’을 유지해 왔다. 이 균형이 미·중협력을 유지하는 경제적 기초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경제위기 이후 재정적자를 축소하고, 동아시아지역에 수출을 늘리려 하고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 국가들에 수출중심에서 내수중심으로 경제를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6)

이 맥락에서,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호주, 캐나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 참여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과 ASEAN+한중일,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구성원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이라는 두 ‘메가FTA’가 경쟁하고 있다. 두 협정에 참여국들이 혼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미국 대 중국이라는 대립구도는 국제 경제질서의 형성과정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이 설정한 국제경제규범인 ‘개방적이고 투명한’ 경제환경을 수용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국영기업의 ‘불공정한 관행’을 제거할 수 있다면, 중국도 TPP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 정부가 지난해 11월 새로 선포한 방공식별구역. 빨간 선이 이날 조정된 방공식별구역(KADIZ)이다. 이는 보라색 점선인 인천 비행정보구역(FIR)과 일치하며 회색 점선인 중국 방공식별구역(중국 ADIZ)과 연두색 선인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와 상당부분 중첩된다. ⓒ국방부


셋째, 자국의 경제위기를 고려한 미국의 재균형정책이 동아시아지역에서 동맹강화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지역 내 군사적 경쟁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시점이었다. 일본이 미국에 편승하여 중국과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을 선택하면서, 미국과 일본은 방위가이드라인의 근본적 수정을 도모하고 있고,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한 군사력강화를 통해 중국과 갈등하는 국면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열도(尖閣諸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대만명·釣魚臺)를 둘러싸고 일·중이 무력분쟁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었다. 중국이 청일전쟁 패배 이후 일본에 양도되고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반환하면서 일본령이 된 센카쿠열도를 자신들의 핵심이익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게 되면, 중·일 갈등은 가속화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또 다른 동맹국인 한국에는 북한의 도발을 억지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고, 더불어 동아시아지역에서 양자동맹들을 미국을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동맹’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넷째, 2012년 2월 북한과 미국은 다시금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2·29 합의의 형태로 약속했다. 합의의 또 다른 내용은 ▲미국의 대북 영양지원 ▲대북제재에서 민수분야의 제외 ▲6자회담 재개 이후 경수로 제공 논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와 우라늄농축 임시정지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허용 등이었다. 그러나 2012년 4월 북한의 위성 발사로 이 합의는 다시금 붕괴되었다. 2012년 12월 위성발사를 재차 시도한 북한은, 미국의 재균형정책을 위한 군사전략이 “유엔군사령부를 다국적련합기구로 둔갑시켜 아시아판 나토의 모체로 삼으려 하고 있다”는 외무성 비망록을 2013년 1월 발표한 바 있다.

2012년 1월 미국 <국방전략지침>(Defense Strategic Guidance, 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Strategic Defense)은, 중국이 미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반접근’(anti-access)과 ‘지역거부’(area denial)의 전략에 맞서서 미군의 ‘작전적 접근’(operational access)을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북한의 위성 발사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 2087호를 채택하자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결론”에 도달했고,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앞서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루었다고 발표했다. 핵억제력의 확보를 위한 물리적 능력의 강화였다.

다섯째,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로 개성공업지구를 제외하고는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태였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서해를 중심으로 남북한의 군사적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2010년 11월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고, 같은 달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참여하게 되면서, 서해에서의 남북갈등이 미·중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5·24조치가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비밀접촉을 했다. 그 목적은, G20과 핵안보정상회의의 안정적 개최라는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7)그러나 비밀접촉은 실패했다.

박근혜정부가 등장할 즈음 북한은 <조선신보>가 2012년 11월에 보도한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을 공동으로 이룩해나가기 위한 노력”이 자신의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북한의 동북아론의 두 축은 북·중 협력과 남북관계였다.


3.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으로 지역 국제질서의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다는 진단 하에, “한미관계를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만들고 “한중관계를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동북아판 헬싱키 프로세스”인 “서울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반면 문재인 후보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을 동북아 평화협력과 연계하려 했고, 새로운 질서의 형성을 위해 “한·미동맹을 보다 호혜적이고 균형적이며 수평적인 관계로 공고히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었다. 박근혜 후보의 동북아 담론에는 협력안보 또는 공동안보, 한반도 평화체제, FTA를 포함한 경제질서 등이 의제로 담겨 있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이론적 진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아시아 패러독스는 동북아국가들의 경제적 상호의존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적 협력이 발생하지 않는 현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동북아 평화협력의 핵심 내용은, “다자안보협력의 경험이 일천한 동북아 지역의 현실을 감안하여 군비통제나 군축과 같은 전통적인 안보문제보다는 비전통적이고 초국가적 이슈, 즉 연성 안보(soft security) 이슈—초국가적 범죄, 환경, 기후변화, 에너지, 재해·재난, 질병, 핵안보, 사이버 테러 등-에 대한 협의와 협력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러한 이슈를 중심으로 한 협력의 습관과 신뢰를 배양하여 점진적으로 경성안보(hard security) 이슈로의 전이와 확산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8) 김대중 정부 대북정책의 이론적 기초였던 선경후정(先經後政)과 선이후난(先易後難)의 ‘기능주의’(functionalism)를 연상하게 하는 구상이다.

아시아 패러독스가 존재론과 인식론의 측면에서 적절하다면, 그 이면(裏面)은 동북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안보딜레마의 고질적 병폐”다.(9) 안보딜레마의 해결을 위한 다자안보협력은, 냉전시대에는 미·일 동맹과 한미동맹 대 북·중 동맹과 북·소 동맹의 대립으로 담론의 구성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구적 수준에서 냉전이 해체되었음에도, 동북아에서는 경제적 네트워크의 조밀화가 이루어졌지만 미·중관계, 중·일관계, 북·미관계, 북·일관계, 남북관계 등의 동북아국가들의 양자관계에서 안보딜레마는 지속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한 후 추진하고 있는 재균형 정책의 한 방법으로 미·일 동맹과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시화된다면, 동북아에서는 안보딜레마의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동북아 안보딜레마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아시아 패러독스의 인식과 처방의 양면은 기능주의적 접근이 침투확산(spill-over)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할 때, 그리고 적대가 아닌 협력을 지역 차원에서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사회경제적 협력은 물론 안보협력을 생산할 수 있는 두 다자주의(multilateralism)가 필요함을 말해 준다.(10) 기능주의적 협력의 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는 유럽통합을 위한 유럽공동체의 건설도 1970년대부터는 유럽안보협력(CSCE)과 동시적으로 진행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지역의 평화를 위한 사회경제적 협력과 안보협력의 선후에는 정답과 같은 경로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기능주의에 경도된 담론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4.
박근혜 정부 1년의 기간 동안,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담론으로만 존재했다. 동북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경로 형성적 담론이 정책으로 생산되기보다는 경로 의존적 정책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실천을 제약했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직면해야 했던 전임정부의 유산과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경로 의존성이 그 원인일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아시아 패러독스가 가져올 위험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동북아 차원의 신뢰외교를 제안한 것이지만, 북한 및 북핵에 발목이 잡혀 정책의 실천을 위한 첫발조차 내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출범에 즈음하여 핵 보유를 “영구화”했고, 남북협력의 상징인 개성공업지구가 폐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한 쌍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시작부터 위기에 직면했다. 한미의 대응은 확장억제력의 재확인과 맞춤형 억제전략의 추진이었다. 한국정부는 선제타격과 방어를 위한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억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몇 차례의 단절을 반복한 후, 남북고위급회담이 개최되고 남북이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산가족상봉 기간 동안 한미는 북한과 중국의 요구를 부분 수용하여 합동군사훈련을 로우키(low-key)로 진행하면서 안보딜레마를 완화할 수 있는 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실현과 연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태다.
 
한국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이기는 하지만, 미·중 관계에서도 중국이 미국에 요구한 신형대국관계를 둘러싸고 이견이 잠복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중국이 요구하는 신형대국관계의 실험대상인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와 중국이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3원칙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2013년 8월부터 6자회담 참가국을 방문하여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양자외교를 전개했다. 그러나 2013년 11월 중국은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2014년 2월 미국의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여 다시금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논의가 있었다. 미·중이 6자회담 재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안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6자회담 재개가 난항을 겪는 가운데, 2013년 11월 23일 중국은 동중국해 상공의 일부를 자신들의 방공식별구역으로 선포했다. 안보적 이유에서 영공의 방위를 위해 영공 외곽에 임의로 설정하는 선인 방공식별구역을 중국이 일본과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센카쿠열도 및 이어도를 포함하여 설정한 것이다. 11월 28일 한국정부는 방공식별구역과 무관한 의제이기는 하지만, 미국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에 관심을 표명한다고 발표했다. 12월 8일 한국정부는 1951년 한국전쟁 기간에 미국이 선포한 한국공군의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 상공까지 확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미국은 한국의 결정이 동북아에서 군사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했지만, 결국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12월 10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확대 결정에 ‘유감’을 표하고, 평등 및 상호존중 원칙을 바탕으로 한국과 소통하길 원한다는 발언을 했다.

중·일갈등과 한일갈등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2013년 10월 미국과 일본은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인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를 개최를 통해 일본이 공격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타국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했다. 미·일 동맹 강화의 한 형태이기도 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인정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일본 국내정치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결정이었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면서, 한국은 미국이 재균형 정책을 추진하는 한 수단으로 고려하고 있는 한미일 삼각동맹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악화된 한일관계를 지속하면서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할 것인가를 질문 받는 형국이 되었다. 만약 중·일 갈등이 악화된다면, 그리고 일본이 북한을 활용하여 중국 및 한국에 대한 견제를 시도한다면, 한국은 이분법적 선택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 지난 10월 3일 일본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 2+2 회담. 이 자리에서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했다. 왼쪽부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AP=연합뉴스


기능주의적 접근을 통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한 성과로 2013년 11월 개최된 한러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한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1월 13일 개최된 한러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이 북핵 불용을 강조했지만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를 6자회담의 틀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하면서 입장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6자회담을 다자안보협력기구로 발전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와 남북러 삼각협력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국기업의 참가가 5·24조치를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한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핵심에 대북정책이 자리 잡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사건이다. 

5.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은, 튼튼한 안보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축을 우선하느냐에 따라 외교·안보정책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1년여의 과정에서 확인되는 것은, ‘안보절대주의’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안보를 위해 안과 밖의 능력을 강화하는 정책의 우선이었다.

북한의 핵보유 영구화 선언과 함께 시작한 정부로서 안보에 대한 강조는, 지배 연합의 성향 때문만은 아닌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둘러싼 남북한의 공방은 전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유산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공약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재연기하면서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를 도입하려 하고 있고, 한미동맹을 통해 맞춤형 억제전략을 구축하려 한다.

안과 밖의 자원을 동원한 안보능력의 강화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이른바 ‘안보딜레마’의 함정이다. 북한의 핵개발이 세력균형이론의 시각에서 힘의 열위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한국과 한미의 군비증강은 북한의 핵개발 및 핵보유의 영구화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11) 서로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남북한의 군비경쟁이 가속화될 수 있다.

다른 한편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는 중국의 위협을 상정하고 진행 중인 미·일 미사일방어체계와 함께 동북아의 군사적 경쟁을 가속화할 수 있다. 즉 북핵을 위협으로 상정한 군사력 강화가 동북아 차원의 안보딜레마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체계에 한국이 편입된다면 한국의 선택이 미·중 갈등을 야기하고 한중관계가 악화되는 최악의 동북아질서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동북아 평화협력구상과 6자회담을 연계하는 발상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6자회담의 9·19공동성명과 6자가 만든 실무그룹—한반도 비핵화, 북·미관계, 북·일관계, 경제에너지, 동북아 평화와 안보 등—은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맹아를 담지하고 있다. 중국이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경주했지만, 2013년의 결과는 중국이 미국과 북한을 동시에 견인할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준다.

한국도 일본과 북한을 제외한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에 합의를 도출하려 했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의 재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해 만약 한국이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을 실천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다면, 한국은 북핵을 매개로 미·중 관계의 조정자 역할을 하며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정치·경제적 규범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은 기로에 서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담겨 있는 중견 국가적 담론과 실천을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다. 만약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미·중 협력보다 미·중 갈등을 촉매하는 역할을 하게 될 때, 한국은 안보불안과 경제적 손실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의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이다. 첫째,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의 연장인 외교·안보정책의 전환을 위해 국내 정치적 기반을 확대하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둘째, 안보절대주의가 야기하는 안보딜레마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협력안보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 만약 새로운 개념의 설정이 어렵다면, 최소한 안보절대주의를 안보 관련 기관으로 한정하고, 청와대가 각 기관의 정부정치를 조정하는 형태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기관은 물론 다양한 시민사회의 행위자들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2013년에도 남북관계가 미·중 관계의 함수로 기능하는 사례들이 발견되지만, 남북관계는 강대국 정치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 수 있고 인도적 지원과 기능주의적 협력이 결합된 대북정책이 강대국정치가 한국에 부과하는 제약을 완화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넷째, 한반도 평화체제의 의제화를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을 실현하는 경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교환하려는 6자회담은 동북아 평화협력을 추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다섯째, 한중일 협력사무국과 같은 평화와 협력을 위한 기존 제도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 필자 주석

(1) 이 글은 “담론의 모순과 정책과의 괴리: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과 안보 정책,” <시민과 세계>, 24호 (2014)를 축약하고 수정, 보완한 것이다.

(2) 하영선 편,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복합과 공진> (서울: EAI, 2013).

(3) D. Held and D. Mepham eds., Progressive Foreign Policy: New Directions for the UK (Cambridge: Polity, 2007).

(4) 하영선,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5) S. Rice, “America’s Future in Asia.” http://www,whitehouse.gov.

(6) Rice, “America’s Future in Asia.”

(7) 김종대, <시크릿 파일 서해전쟁> (서울: 매치미디어, 2013).

(8) 이상현, “동북아 안보환경 변화와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1년,” <격랑의 동북아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외교>,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통일전략포럼 2014-1.

(9) 최종건,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한 비판적 관점 및 성공을 위한 제언,” <격랑의 동북아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외교>

(10) M. Green and B. Gills eds., Asia’s New Multilateralis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9)

(11) 정욱식, “‘킬 체인’과 MD가 북핵을 무용지물로 만든다고?” <프레시안>, 2013년 10월 8일.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201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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